인터뷰 해석

Franz Ferdinand(프란츠 퍼디난드) Pitchfork(피치포크) 5-10-15-20 인터뷰 해석/번역

블루거 2014. 10. 2. 17:55

Franz Ferdinand

Frontman Alex Kapranos on connecting with the cultural omnivorousness of Madness as a teen, loving Fleetwood Mac before they were cool, and more.

By Larry Fitzmaurice,September 10, 2013

영어 본문 : http://pitchfork.com/features/5-10-15-20/9207-franz-ferdinand/

프란츠 퍼디난드 피치포크 5-10-15-20 인터뷰 해석
Franz Ferdinand
Photo by Andy Knowles
5-10-15-20 칼럼은 아티스트가 그들의 삶에서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앨범들과 노래들을 소개하는 칼럼입니다.(아티스트 인생의 5년씩 건너뛰며 하는거임, 5살, 10살, 15살, 20살 이렇게)

이번 화는 얼마전에 4집 앨범, "Right Thoughts, Right Words, Right Action" 을 발표한 Franz Ferdinand(프란츠 퍼디난드)의 41살의 밴드 리더 Alex Kapranos(알렉스 카프라노스)와 함께합니다.



*앨범 사진을 클릭하면 유투브 플레이 리스트로 이동 합니다.



The Beatles: 1962-1966

The Beatles: 1962-1966
비틀즈의 1962-1966

60년대에 우리 아버지는 Beat(음악장르) Group에서 연주 하곤 했지, 그렇니 난 어릴적에 많은 걸 배우려 했지, 왜냐하면 난 음악이 그냥 방구석 스피커에서 튀어 나오는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알았거든. 그건 마법이 아니야, 그리고 그리 큰 미스테리도 아니지. 난 아마 그때 아버지가 코드를 잡아주는 기타를 손으로 치기만 했을거야 -- 좀 중요한 순간이긴 했지. 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져 악기를 좀 연주할줄 아는 일반 사람들이란걸 알았어. 나는 언제나 내가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

부모님은 레코드 연주기가 들어간 큰 나무 서랍을 가지고 있었어--결혼 선물로 받은 거 였지-- 그리고 난 아직도 비틀즈의 1962-1966 싱글즈 모음, 레드앨범(Beatles 1962-1966 singles compilation, the Red Album)을 듣던 기억이나. 팝(Pop) 음악, 락(Rock)음악, 네가 그걸 뭐라고 부르든간에,  그 앨범만큼 그걸 잘 표현한 앨범은 없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구. 난 레드 앨범(Red Album)이 블루 앨범(Blue Album, 1967-1970 singles compilation) 보다 낫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난 그들의 2가지 스타일을 --Mop-tops(초기 비틀즈 헤어스타일) 과 긴 머리+동그란 안경 조합(후기 비틀즈 스타일) -- 모두 좋아하긴 하지만, 5살의 나는 Mop-tops한 사람을 더 좋아했어.

이 나이의 애들은, 음악을 매우 순수한 방식으로 이해하지. 그에 따라 춤을 추고, 즐기고, 그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지. 누구도 어떤 마이크를 사용한지, 존 레논(John Lennon)이 누구며, 그의 철학이 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해. 그냥 팝(Pop)일 뿐이라구. 우리 엄마는 영국 사람이였고, 아빠는 그리스 사람이였어, 하지만 난 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 때 까지 그들이 문화적으로 틀리다는걸 전혀 보지 못했다구. 5살의 애들은 왜 자기가 자기 할머니와 같은 언어를 말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지 -- 그런거였어.



Madness: Absolutely

Madness: Absolutely
매드니스의 엡솔루틀리

우린 잉글랜드(England)에 위치한 선더랜드(Sunderland)에 살다가 스코틀랜드(Scotland)로 옴겨갔어, 난 그곳에서 내 영어 억양 때문에 선생한테서 많은 지적을 받아야 했지; 에딘버그(Edinburgh)의 교실에서 타인사이드의(Tyneside) 억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마치 왕따가 된듯한 느낌이였어. 그 후 몇년 간, 난 아직도 그 땅(Scotland)에 영국을 향해 몇세기동안 축적된 적의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지. 그게 살의는 아니였고 모든 사람이 그리 느끼는 것도 아니였어,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구.

내가 그 당시에 가장 좋아했던 앨범은 매드니스(Madness)의 Absolutely라는 앨범이야. 그건 애들을 위한 최고의 음악이였지. 그 앨범에는 생생함과  에너지가 담겼어,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가진 놀라운 Gang들 이란 사실은 매우 강렬했어. 그게 약간은 위험하게도 느껴졌지. 애들은 부모가 애들이 들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10살이 채 되기 전에도 듣기 시작한다구. 나 또한 닥터 마틴(Dr.Martens)을 신는거 때문에 엄마와 큰 싸움을 벌인게 기억이나, 왜냐하면 그게 잘나가는 애들이 신던거거든.  나는 막 "나도 잘나가는 애들이 되고 싶어!" 하고 소리쳤지. 말 잘듣는 애는 되기 싫었어 -- 난 문제아가 되고 싶었어! 그렇지만 실제로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았어. 난 그냥 날 가르치던 선생을 싫어했을 뿐이야. 난 선생이 쓰레기 같은 말을 한다면, 그렇다고 말을 했지, 그리고 그 후에 언제나 문제에 휘말리고는 했어. 난 그런 말을 하는게 무섭지는 않았어

Madness의 노래들에는 영국문화에 대한 엄청난 관찰이 담겨있지. 그 당시, 영국은 폭동이 넘쳐났어, 많은 이민자들이 처벌을 받았지. 난 우리 학교 책상위에 "National Front"(영국의 극우정당)의 약자인 NF 가 적혀있던게 기억이 나. 끔찍하던 때였지. 나는 유럽출신이라 완전히 영국에 적응하기는 했지만, 난 알고 있었어, 내가 그리스인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철저히 조사된걸. 매드니스(Madness)나 스페셜(The Special)같은 밴드들이 멋졌던건, 바로 그들이 자메이카(Jamaca)와 런던(London)의 영향을 둘 다 받았다는 거야. 그건 영국 문화 역사에서 정말 엄청난 순간 이였지, 그리고 그게 10살 짜리 애가 노래를 들으며 소파에서 뛸 수 있는 그런 좋은 노래 들을 만들어냈지. 그 당시의 Madness(매드니스) 노래가 지금 나온다해도,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 줄거야.


Fleetwood Mac: "Oh Well"

Fleetwood Mac: "Oh Well"
플릿우드 맥의 Then Play On 의 수록곡 "Oh Well"

내 친구인 앤드류 콘웨이(Andrew Conway)와 나는 학교를 함께 걸으며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집으로가 연주를 하곤 했지. 그가 나에게 그 당시에는 매우 인기 없었던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을 소개 해줬어 그들이 지금 이 정도의 힙스터(Hipster)밴드가 된걸 보면 아직도 신기하단 말이야. 난 아직도 그들(Fleetwood Mac)이 학교에서 우리 세대에게 미움 받던 걸 기억하면 웃음이 나, 아마도 그 때문에 나와 앤드류(Andrew)가 그들에게 더욱 빠져들었는거 같아. 난 언제나 대중들과는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는 했지.

우린 특히나 초기의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 앨범인 "Then Play On" 에 빠져 들었어, 난 피터 그린(Peter Green)의 목소리를 사랑했지. 모든 블루스(Blues) 카버들은 괜찮은 수준이였지만, 그가 직접 적은 노래들은 진짜 엄청났어. 내가 "Oh Well"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게 강렬함과 직접적임을 가졌지만 일반적인 노래 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건 진짜 긴 리프를 가지고 있었지. 난 그걸 듣자 마자, "이건 팝 음악이 아니야, 이건  락 음악도 아니야-- 도대체 어디서 이런게 나온거야?" 라고 말했어. 난 그런 창의적임이 마음에 든다구. 그리고 가사는 내가 15살때 느끼던 고립됨 외로움에 딱 들어 맞았지:"내 현재 모습을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노래를 부를 수도 없어, 난 아름답지 않고 내 다리는 매우 가늘어"("I can’t help what shape I’m in/ Can't sing, I ain’t pretty and my legs are thin.”, 실제 가사). 이게 바로 15살의 내 모습이였지. 나는 내 목소리가 나가버려서 피터 그린(Peter Green)같이 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Oh Well" 은 나와 앤드류(Andrew)가 처음으로 녹음한 노래야. 앤드류(Andrew)는 작은 4 - Track TASCAM(브랜드명) 카세트가 있었는데, 우리는 두 명이서 매우 이상한 버젼을 녹음했지. 그 때부터 몇 년간, 우리는 그의 방으로 가서 계속 연주 했지. 그의 부모님은 나에게 굉장히 잘 대해 주셨어-- 우리가 말도 안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동안 쥬스도 가져다 주셔지. 우린 아마도 앨범 15개 정도 되는 양의 녹음을 했을꺼야,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져 우리 둘만을 위한거였지.



Minutemen: Double Nickels on the Dime

Minutemen: Double Nickels on the Dime
미닛맨의 Double Nickels on the Dime

난 글래스고우(Glasgow)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어, 하지만 난 높은 수준의 수학(한국으로 치면 수학 나형)을 낙제했기 때문에 들어 갈 수 없었지. 그래서 난 에버딘(Aberdeen)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했어. 난 그걸 정말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했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난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교에서 배울 것은 많이 있어, 누구도 자기 안에 있는 영적 욕구를 거부 할 수는 없다구. 하지만 난 1년 후에 학교에서 나와야 했어, 왜냐하면 내 동기들이 대부분  장로교본부의 부름을 받았거든, 난 그런거에는 관심없는 사람이였으니 나왔지.

이 때쯤, 난 글래스고우(Glasgow)의 DIY 펑크(Punk)에 빠져들기 시작했어. 난 13th Note(글래스고우의 음악카페)를 자주 갔지, 여기서 공연한 애들은 대부분 유명하고 성공적인 밴드가 됬어: 모과이(Mogwai)는 그들의 첫 공연을 여기서 했고,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은 거기서 처음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 노래를 공연했지. 그 당시 친한친구로 내가 최근에 앨범을 프로듀스 해준 알엠 허버트(RM Hubbert)가 있는데 그가 나에게 여러가지 다른 음악들을 소개해줬지-- 특히나 SST 와 West Coast Punk같은 장르들 말이야-- 그게 나에게 큰 영향을 줬어. 미닛맨(Minutemen)의 Double Nickels on the Dime은 나를 새로운 기타 연주의 세계로 인도해줬지. 그들은 밴드에 속해 있음이 락스타가 되는것과는 다르다는걸 알려줬어. 그들의 가사는 내 삶과는 동떨어진 내용이였지만, 그들이 말하던 진실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



Brian Eno: Here Come the Warm Jets

Brian Eno: Here Come the Warm Jets
브라이언 이노의 Here Come the Warm Jets

Here Come the Warm Jets 은 우리에게 많은 아이디어들을 줬어, 왜냐하면 갑자기 펑크락과는 다른게 튀어나와 버렸거든. 그 음악은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이 지배하던 시대의 것이였지, 그건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밴드들의 목적이던  'Sonic Adventurous'(한국어로 맞는 단어를 모르겠음, 알면 댓글 좀) 함을 가지고 있어지, 하지만 Here Come the Warm Jets은 원초적인 형태를 띄고 있었어. 이노(Eno)가 기타를 연주할 때, 마치 그가 솔로 기타를 문지르는듯한 소리가 났어.

또 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창의적임과 도전성을 사랑했지.  그가 50년대의 팝(Pop) 음악 같은 노래에 스토브가 빨갛게 달아 오를 때 까지 놔두는 여자("left their hot points to rust in their kitchenettes", Brian Eno의 Cindy Tells Me 가사)에 대한 아이러닉하고 비꼬는듯한 가사를 붙인 방식도 좋지. 가사에 큰 점수를 주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는 정말 엄청난 작사가였다구. 내가 이 앨범을 한창 들을 때는 브릿팝(Britpop)의 시대가 끝나가던 때 였어, 그리고 몇년간 우리는 60년대를 퇴보하는 음악들에 쌓여 지내야 했지. 이상하게도 난 70년에서만 뭔가 진보적이고 미래지향적인걸 찾을 수 있단 말이야. Here Come the Warm Jets의 사운드는 90년대에 만들어진 노래들보다 훨씬 현대적이야. 


Neutral Milk Hotel: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Neutral Milk Hotel: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뉴트럴 밀크 호텔의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의 베이시스트인 밥 하디(Bob Hardy)와 나는 주방에서 일했지-- 그는 짐을 나르고 그릇을 씻었어, 그리고 나는 디져트를 만드는 쉐프였지. 나는 언제나 마지막 남은 몇몇이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렸어, 그리고 그는 그들의 접시를 기다려야했고, 우린 함께 다닐 수 밖에 없었지. 우린 우리 가상의 밴드에서 우리가 어떤 음악을 해야할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우리의 철학은 뭐가 될 것이며, 우리는 어떤 공연을 하고, 어떤 것에 대해 노래해야할지 등등. 

물론 우린 서로에게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연주했지, 그리고 그중에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앨범이 바로 뉴트럴 밀크 호텔(Neutral Milk Hotel)의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밥(Bob)은 언제나 미국 인디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졌지-- 그는 내가 혼자선 알아보진 않을 것들을 많이 소개 시켜 줬어-- 그리고 나는 앨범에 실린 제프 만금(Jeff Mangum)의 원초적인 감정과 스피커를 통해 연주되는듯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사랑했어. 보통은, 어쿠스트틱 기타를 녹음할 때 엔지니어나 프로듀서는 튀느듯하고 생생하면서 달콤한 사운드를 내려 하지, 하지만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의 기타는 버즈콕(Buzzcocks)의 첫 EP 만큼 더러운 사운드를 가졌어. 난 "Two-Headed Boy"를 최근에 함께했고 이 노래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들려줬는데, 그녀는 노래를 듣자 울기 시작하더군. 이건 정말 감정적으로 잔인한 앨범이야


The Cribs: Men's Needs, Women's Needs, Whatever

The Cribs: Men's Needs, Women's Needs, Whatever
더 크립스의 Men's Needs, Women's Needs, Whatever

난 내가 참여한 앨범들은 뽑기가 싫었는데 말이야, 뭐 내가 뽑든 모든 앨범들은 어떻게든 그 당시 나의 주위 사람들과 관련이 있으니 말하겠어. 이건 내가 처음으로 스튜디오에서 내가 만들지 않은 음악을 프로듀스한 작품이야, 그리고 그건 정말 좋은 경험이였어. 난 잘만(Jarman) 형제들과 정말 친해졌다구, 그리고 아직도 그들은 내게 좋은 친구들이야. 난 그 가족들의 친밀함이 정말 좋아, 그리고 그들이 가진 상반된 창의성도 사랑하지. 

나에게 있어서, 그 밴드는 그 당시 영국에 일어난 일들중 가장 좋은 일 이였어: 그 당시에 몇몇 기타 밴드들이 좀 더 진화한 형태의 음악을 만들고 있었지. 그 중 몇은 정말 좋은 음악이였고, 몇은 아니였지. 크립스(Cribs)는 좋은 쪽 이였어. 특히나 그 당시에는 정말 에너지가 넘치고 신나던 밴드였지.


Stravinsky: The Rite of Spring

Stravinsky: The Rite of Spring
스트라빈스키의 The Rite of Spring

최근에 들은 노래 중 가장 놀라웠던 건 바로 런던의 로얄 페스티벌 홀(London's Royal Festival Hall)에서 열린 The Rite of Spring 공연이였어. 그건 내가 간 공연 중에 가장 역동적인 공연이기도 했지.

난 1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함께 그리스(Greece)로 돌아 갔었어. 거기 몇 년간 가지 못했었는데, 가보니 그 나라가 지금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겠더군. 그리스(Greece)는 지금 정말 잘 못된 길에 있어. 난 그리스(Greece)가  70년대와 80년대동안 변하는 걸 봤어, 그리고 아테네(Athens)와 영국(UK)의 차이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도 보았지. 하지만 최근에 돌아갔을 때 보니, 매우 다르더군, 마치 다른 장소 같았어.

난 과거에 대한 향수는 절대로 느끼지 않아; 내가 바이크를 탈 때면, 난 절대로 뒤를 보지 않지, 왜나하면 그렇면 난 넘어지거든. 그게 내가 밴드에 임하는 느낌이야. 난 다른 3명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경험들을 쭉 즐겨 왔지, 그리고 아직도 즐기고 있고. 내가 너무 뒤를 돌아보게 되고 도전성을 잃게 된다면 난 넘어지고 말거야. 난 그렇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다구.